병원체 독성은 항상 감소하는가? 전염력-독성 상충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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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는 금세기에 유례없는 거대한 팬데믹 현상을 불러왔고, 그로 인한 생활 양식의 변화는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감염 초기 높은 치사율을 보였던 코로나바이러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수십 분의 일 수준으로 치명률이 낮아졌고[1], 이제는 일상적인 독감 수준의 인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 원인으로는 다양한 백신과 예방의학의 발달의 영향도 있지만 바이러스 자체가 약독화된 것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약독화 현상은 팬데믹 초기에도 다양한 전문가들이 예측했던 것이었으며, 다행스럽게도 실제 그 방향으로 진화가 이루어졌다.
이는 병원체 진화에 대한 고전적 관념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미국의 병리학자인 테오볼드 스미스는 1904년 '무병원성 가설'을 제시한다. 이는 병원체의 독성은 진화 과정에서 0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가설이다.
병원체는 자신의 복제가 최우선 목표인데, 숙주의 죽음은 감염 단계를 종료시켜 전염을 멈추게 한다.
병원체로 인한 사망이 없다면 숙주는 더 오랫동안 복제와 전염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기에 비병원성이 되는 것이 가장 유리한 진화 방향이라는 것이다.
이는 일견 직관적으로도 납득이 가능한 타당한 가설로 보인다.
-전염성-독성 상충 가설이 최초로 제안된 논문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이 앞으로도 모든 병원균에 적용되리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실제 감염과 독성의 진화에는 수많은 변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병원성 가설을 비판하기 위해 '전염성-독성 상충 가설(이하 상충 가설)'이라는 다른 모델이 제안되었다[2].
-상충 가설의 간략 개념도
이 가설은 숙주의 죽음이 전염 기간을 단축시킨다는 점에서는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독성과 전염성은 완전히 독립적인 특성이 아니며, 둘 사이에는 일정한 상충 관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병원체가 새로운 숙주로 전파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의 숙주 안에서 충분히 증식해야 한다.
숙주 내 증식량이 너무 적다면 체외로 배출되는 병원체의 수 역시 적어져 전염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증식량이 증가하면 전염성도 함께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숙주 내에서의 증식은 동시에 조직 손상과 면역 반응을 유발하기 때문에 독성 역시 증가하는 경우가 많다.
즉 병원체는 더 잘 퍼지기 위해 증식해야 하지만, 지나친 증식은 숙주를 너무 빨리 죽여 오히려 전파 기회를 감소시킬 수 있다.

-상충 가설을 설명하는 그래프
(R0=병원체의 재생산율)
상충 가설은 바로 이러한 이유로 전염에 가장 유리한 최적의 독성 수준이 존재한다고 본다. 만약 병원체가 처음 등장했을 때 독성이 이 최적 수준보다 높다면 낮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고, 반대로 최적 수준보다 낮다면 더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무병원성 가설은 다음의 수식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곤 했다.
R~a/(b c)
R=병원체의 재생산(증식)율
a=전염률
b=숙주 회복률
c=숙주 사망률)
이는 병원체가 감염 가능한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새로운 숙주를 감염시킬 수 있는지를 단순화하여 표현한 식이다. 즉 병원체의 재생산을 위해서는 사망률이 낮아지고 전염률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수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각 변수들이 서로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상충 가설은 바로 이 점을 비판하였다. 실제로는 전염률과 사망률 모두 병원체의 숙주 내 증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서로 완전히 독립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병원체가 숙주 내에서 더 많이 증식할수록 전염성은 증가할 수 있지만, 동시에 숙주 손상 역시 증가하여 독성도 높아질 수 있다.
따라서 전염성과 독성은 하나의 원인인 '증식'을 통해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반영하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R~a(c)/(b(c) c)
즉 전염률과 회복률 또한 독성의 영향을 받는 함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병원체의 진화는 단순히 사망률을 낮추는 방향이 아니라, 전염성과 독성 사이에서 가장 높은 적응도를 제공하는 지점을 향해 이루어진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때 무병원성 가설은 '법칙'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널리 받아들여졌으나 그 반례들이 속속들이 발견되자 상충 가설이 병원체의 진화를 더 잘 설명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점액종 바이러스에 감염된 토끼
그 중 하나로 호주의 토끼 점액종 바이러스가 있다.
호주 내에 과도하게 증식한 토끼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해 유럽에서 치사율 99%에 달하는 바이러스를 도입하자, 초기에는 수많은 토끼들이 사망하여 성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점차 치사율이 감소하였고, 이 현상은 무병원성 가설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속 연구에서 치사율이 낮아졌음에도 여전히 90%에 달하는 높은 수치를 보이는 계통이 있었으며, 일부 계통에서는 독성이 감소 후 다시 증가하는 현상도 관찰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사례는 병원체가 반드시 무해한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독성을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반례가 되었다[3].
HIV(에이즈 유발 바이러스) 역시 무병원성 가설에 의거해 독성이 낮아질 것이란 전망이 있었으나, 해당 예측은 우간다에서만 실현되었으며 스위스에서는 독성이 유지되었고 미국과 이탈리아에서는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천연두 또한 원래는 치사율이 낮은 바이러스였으나, 지난 수백 년간 점차 독성이 상승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매우 치명적으로 변화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4].
이처럼 무병원성 가설은 병원체의 증식과 전염성, 독성 사이의 관계를 지나치게 독립적이고 단순화해 오류가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반면 상충 가설은 이들 요소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실제 관찰되는 다양한 사례들을 더 잘 설명한다.
-병원체의 진화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요소들
다만 상충 가설은 병원체의 진화에 대해 구체적인 예측을 제공해 주지는 못한다. 전염과 독성에는 매개체, 면역과의 공진화, 숙주의 종류 등 더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충 가설은 모든 병원체의 독성-전염성 관계를 설명한다기보다 숙주 내 병원체의 증식과 연관된 독성-전염성 관계를 강조하는 모델에 가깝다. 그에 따라 상충 가설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예외도 존재한다.
다만 이는 생물학에 수학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한계라고 볼 수 있다. 물리학과 화학이 수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많은 진보를 이루었듯이, 생물학 또한 수학과의 접목이 더욱 활발해진다면 인류 보건 증진뿐 아니라 학문 자체의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하리라 기대해 본다.
*수학 관련한 부분은 본인의 몰이해로 많이 생략되었음
*자세한 내용은 참고문헌 참조
1.Horita, N., & Fukumoto, T. (2022). Global case fatality rate from COVID‐19 has decreased by 96.8% during 2.5 years of the pandemic. Journal of Medical Virology, 95.
2.Kun, Á., Hubai, A.G., Král, A. et al. Do pathogens always evolve to be less virulent? The virulence–transmission trade-off in light of the COVID-19 pandemic. BIOLOGIA FUTURA 74, 69–80 (2023).
3.Kerr, P. J., Liu, J., Cattadori, I., Ghedin, E., Read, A. F., & Holmes, E. C. (2015). Myxoma virus and the Leporipoxviruses: an evolutionary paradigm. Viruses, 7(3), 1020–1061.
4.Alcamí A. (2020). Was smallpox a widespread mild disease?. Science (New York, N.Y.), 369(6502), 376–377
출처: 싱글벙글 지구촌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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