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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한끼에 백만원을 태운 썰 #1. 알랭뒤카스 르 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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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정형파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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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 시간을 마지막 타임에 가까운 오후 9시에 잡았는데도 공항에서의 뻘짓으로 인해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레스토랑.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스토랑을 꼽으라면 언제나 빠지지 않는 르 모리스의 호텔의 알랭 뒤카스입니다. 2026년 현재 미슐랭 스타 두 개를 유지하고 있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기도 하지요. 원래는 3스타였다가 요즘들어 힘이 좀 빠지면서 2스타로 내려오긴 했는데 뭐, 알랭 뒤카스가 가진 별이 워낙 많아서 몇 개 빠져도 모를 듯. 무엇보다도 알랭 뒤카스는 세계 여기저기 운영하는 레스토랑도 많고, 초콜릿이나 커피 등 벌여놓은 사업도 많아서 아모리 부우르라는 제자(또는 분신, 또는 클론)가 주도적으로 이곳을 운영합니다. 일단 들어가면서부터 베르사유 궁전 평화의 방 컨셉을 그대로 가져온 내부 모습에 압도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어뮤즈 부쉬. 에스카르고, 새우, 오이, 기타 등등. 웰컴 드링크로 나온 쌉사름한 음료와 함께 먹어주면 입맛을 돋궈줍니다. 개인적으론 핀셋 주면서 뭐 집어먹으라고 하는 건 별로 안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요. 포스트모던한 분자요리 스타일 식당이라면 모를까 이런 곳에서는 클래식한 은식기가 제격입니다. 아니면 아예 손으로 집어먹고 장미꽃잎 띄운 물로 씻던지 말이죠. 빵과 소금. 인생 살면서 없어서는 안될 것들. 그리고 여기에 진짜 맛있는 버터를 살짝 더해주면 인생은 훨씬 더 풍요로워집니다. 바게트, 크러스티니, 버터, 소금 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씨앗이 붙어있는 잡곡빵만 좀 별로. 두번째 어뮤즈가 나옵니다. 커다란 그릇에 드라이아이스 연기 뿜뿜 뿜으며 미역줄기 위에 놓여있는 굴 한조각. 미역도 먹으면 안되나? 괜히 궁금해집니다. 아주 살짝 익힌 굴에 새콤한 얼음을 갈아 올렸습니다. 그냥 레몬즙 뿌리는 것보다 이렇게 놓으니까 식감도 대비되고 좋네요. 다만 맛 자체는 아직까진 그렇게 엄청나다! 수준은 아닙니다. 슬슬 와인 한 병 끼고 시작합니다. 혼밥이다보니 한 병을 다 비우는 건 무리고 하프보틀 중에서 한 종류로 어지간히 전 코스를 다 커버할 수 있는 와인을 부탁했습니다. 생줄리앙 샤토 생 피에르 2014년산. 검은 과일 향 베이스에 바디와 탄닌이 묵직한 보르도 4등급 그랑 크뤼 와인입니다. 파리의 와인 소매점에서는 50유로 정도면 살 수 있을텐데 파인다이닝답게 세 배 넘게 튀겨서 160유로입니다 ㅎㄷㄷ 첫 번째 메뉴. Lightly cooked sea bream from Noirmoutier / carrot / marigold / smoked yogurt. 살짝 익힌 누아무티에 도미, 당근, 메리골드, 훈연한 요거트. 누아무티에는 프랑스 서부 해안의 해산물 명산지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영덕 대게나 완도 전복 같은 느낌. 약간 생선회의 느낌이 남아있는 도미를 소스와 함께 먹어줍니다. 근데 처음엔 맛있는데 얼음 방석이 조금씩 녹으면서 소스가 묽어집니다. 차라리 불 위에 올려서 갈수록 맛이 진해지면 모를까 맛이 옅어지는 게 좀 아쉬웠네요. 모비엘(구리 조리도구 회사) 너네 프랑스 꺼잖어... 열전도율 짱짱한 구리 그릇에 주석칠해서 담은 다음 얼음 위에 놓는게 훨씬 좋을텐데. Warm Guinea fowl and foie gras pâté / bitter salad 쌉쌀한 샐러드를 곁들인 뿔닭과 푸아그라 파테. 이번에 프랑스 오면서 푸아그라 원없이 먹고 가야지 싶어서 주문한 메뉴. 근데 이건 완전 실망입니다. 마트에서 푸아그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프랑스 사람들에겐 푸아그라를 조연으로 써서 뿔닭을 맛있게 먹는 게 좋을지 모르겠는데 푸아그라 기대하고 온 입장에서는 뿔닭의 풍미가 너무 강해서 푸아그라를 덮어버렸습니다. Wild turbot from Brittany on the griddle / red onion / girolle / bone marrow 소의 골수와 샹트렐 버섯, 적양파를 곁들인 브르타뉴산 자연산 터봇(광어 비슷한 대형 가자미). 해산물까지는 허용하는 페스코 베지터리언들이 먹으면 감동의 눈물을 흘릴 요리입니다. 생선인데 고기 맛이 납니다. 아니, 생선 풍미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고기의 식감이나 무게감을 가져왔습니다. 여기까지 먹으면서 '평소에 샤도네이나 소비뇽블랑 좋아한다고 화이트 와인 시켰다간 큰일날 뻔 했네'라며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뿔닭은 말할 것도 없고 생선들도 워낙 묵직해서 보르도 레드와 잘 어울렸거든요. Crispy blue lobster / radish / red orach / red pepper 바삭한 블루 랍스터, 순무, 붉은 오라치(비름나물 비슷한 잎채소), 고추. 요리 받으면서 웨이터에게 "이건 딱 봐도 사람 갈아넣어서 만든 랍스터인데"했더니 "우리 요리사들이 최선을 다 하고 있기는 하죠"라고 대답합니다. 이곳 웨이터들은 뭐랄까 유머 감각이 없어요. "음식 알러지 없으신가요?"라고 묻길래 "탁자랑 의자도 먹을 수 있음"했더니 "하하"하고 그냥 가버리질 않나. 아무래도 고급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보니 로봇처럼 칼같이 움직이는 스타일인가 봅니다. 아무튼 사람 갈아넣은 음식은 언제나 맛있습니다. 얇은 칩을 일일히 붙여서 요리했는데, 랍스터 자체도 맛있지만 소스에 적셔서 바삭한 칩과 함께 먹으면 시너지가 훌륭합니다. 고기 요리 나오기 전에 팔레트 클린저로 토마토 반 쪽이 나왔습니다. 요리의 역사 배울 때 누벨 퀴진을 커다란 은식기로 거대한 접시 위에 놓인 완두콩 한 알 찍어먹는 그림으로 표현한 걸 봤는데, 딱 그 느낌이네요. 그런데 이 토마토, 어떻게 절였는지 모르겠지만 새콤하면서도 청량한 게 혀를 씻어주는 역할은 제대로 합니다. 메인 고기요리 나오기 전에 주변 둘러보며 사진 한 장. 처음 왔을 때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사진 찍기가 애매했는데, 9시부터 먹기 시작해서 시간이 꽤 지나니 손님들도 많이 빠졌습니다. 커다란 벽화, 천장화, 대리석 무늬, 금박 장식과 샹들리에가 잘 어우러집니다. 다만 LCD 모니터에 띄워놓은 가짜 장작불은 어떻게 좀 안되겠니... 그냥 멋진 앤틱 가림망 하나 세워놓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말이죠. 오늘의 메인 고기. 송아지나 닭보다는 토끼가 왠지 끌려서 주문한 토끼 고기입니다. Roasted Burgundy rabbit from Père Laurent / mustard / courgette 겨자와 주키니 호박을 곁들인 부르고뉴의 페르 로랑 토끼. 페르 로랑은 토끼 고기 브랜드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한돈 같은 느낌입니다. 맛은 있는데... 뭐랄까 막 엄청나게 놀라운 맛은 아니고 와인하고 잘 어울리는 술안주 느낌의 고기입니다. 왠지 익숙한 도구가 나오더니, 허브 꽉꽉 채워넣고 육수를 가열합니다. 요즘 이런 식으로 육수나 차를 바로 앞에서 우려내는 서비스가 많던데, 베큠팟 필터 몇 개 사서 집에서 나도 만들어볼까 싶네요. 육수 자체는 아시아풍이 물씬 풍기는 국물입니다. 세이지와 로즈마리를 잔뜩 넣었는데도 국물에 가쓰오부시를 넣은 건지 간장을 넣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익숙한 맛이 납니다. 그런데 국물만 먹을 때는 그냥 그랬는데 곧이어 나온 염소젖 치즈와 함께 먹으니 이게 또 궁합이 잘 맞네요. 커다란 치즈 휠을 들고 와서 바로 앞에서 얇게 깎아줍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어지는 치즈 카트. 자주 먹어본 거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힘든 것 중에 와인과 잘 어울리는 놈들로 골라서 먹었습니다. 12시부터 시계 방향으로 콩테, 생넥떼르, 모르비에, 에푸아스. 콩테는 특유의 버터리한 견과류 느낌이 와인과 잘 어울려서 선택. 생넥떼르는 "옛날에 라 트뤼파드 만들어 보겠다고 그렇게 돌아다녔건만 끝끝내 구하지 못했던 원한을 오늘에야 갚는구나!"라고 외치며 먹어봅니다. 가운데 검은 줄이 들어간 모르비에 치즈는 '검은 잿가루 넣어서 만드는 치즈라고?'라며 항상 궁금했기에 먹어봤습니다. 흙과 나무 풍미가 나는 치즈. 마지막으로 에푸아스는 워낙 강력해서 와인도 덮어버릴 정도인데 '신의 발꼬랑내라고 불리는 치즈가 어느 정도인지 경험해보자'는 심정으로 조금만 먹어봅니다. 근데 이거 의외로 입에 잘 맞네요. 흔히 생각하는 발냄새가 아니라 뭔가 오묘하고 중독성있는 풍미가 확 느껴집니다. 치즈를 다 먹고 나면 본격적으로 디저트 코스에 돌입합니다. 냅킨도 딸기가 수놓아진 것으로 바꿔 주길래 재미있어서 한 장 찍어봤습니다. 바닐라를 듬뿍 묻힌 복숭아 절임. 디저트로 바닐라를 주문했는데 이게 나와서 속으로 '아니지? 이게 디저트는 아니지? 팔렛 클렌져로 나온거지?'라고 두근거리며 냠냠. 불안을 날려보내는 바닐라가 나왔습니다. 처음 보고 이 바닐라 꼬투리의 크기에 어이가 없어서 웨이터에게 "이거 진짜 바닐라 맞냐?"하니까 "물론이죠. 진짜 마다가스카르산 바닐라만 썼습니다!"하길래 "와, 나 태어나서 이렇게 큰 바닐라 처음봐! 내가 쓰던 건 엄청 가늘고 길이도 훨씬 짧았는데!"라고 놀라니 그제서야 "아, 이 검은 껍데기는 과자입니다. 바닐라 모양을 흉내내서 만든 거예요." 그럼 그렇지. 유전자 조작을 어떻게 했길래 이런 미친 크기의 바닐라가 나왔나 충격 먹을 뻔 했네요. 아이스크림은 고급 바닐라빈을 듬뿍 넣어 만든, 기본에 충실한 아이스크림이고 과자 역시 겉보기와 다르게 얇고 바삭하게 부서지는 게 잘 어울립니다. 다만 기대만큼 사람 굴복하게 만드는 포스는 없습니다. 패션프루트, 코코넛, 라임을 갈아서 소르베로 만들고 이걸 다시 원래 껍질 속에 채워 넣은 디저트. 패션프루트와 코코넛까지는 괜찮은데 라임은 거의 벌칙게임 수준으로 신맛이 강합니다. 아무리 시트러스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다 먹는 건 무리. 진짜 진짜 마지막으로 산딸기 타르트, 바삭하면서 쫀득한 참깨 튀일, 초콜릿으로 코팅한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합니다. 음... 티코가 나올 줄 알았으면 디저트를 다른 거 시켜보는 건데 말이죠 ㅎㅎ 이렇게 두 시간 넘게 진행된 저녁 식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비행 여파로 피곤한데다 혼밥으로 빠르게 먹었으니 두 시간이지, 일행과 함께 와서 천천히 이야기 하며 먹으면 최소 세시간 이상은 각오해야 하는 코스였네요. 나오는 길에 레스토랑에서 받은 선물을 호텔에서 열어 봅니다. 알랭 뒤카스가 주력으로 미는 사업이 초콜릿이라 그런지 커다란 초콜릿과 요리용 소금이 들어있네요. 그런데 R은 어디서 나온 머릿글자인지 모르겠네요. 전반적으로 음식만 놓고 보면 "맛은 있지만 기대만큼은 못 미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본에 충실한 거 보자고 이런 레스토랑까지 찾아가는 거 아니잖아요. 다섯 가지 요리를 선택하는 콜렉션 메뉴가 425유로에 와인 160유로, 호텔이라 추가 팁 20유로 현금으로 놓고 온 거 더하면 환율 1650원 기준으로 99만8천원입니다. 혼밥으로 한끼에 백만원 태웠으면 뭔가 이것보다는 좀 더 사람 압도하는 맛이든 퍼포먼스든 보여줘야 했던 거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좀 남네요. 다만 '프랑스 파리까지 와서! 호화찬란 번쩍거리는 곳에서! 와인 마시며 은식기로 밥 한 번 먹어야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있다면, 특히 여성과 함께 온다면 가격의 20% 정도는 경치값으로 간주해도 되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우리나라도 시내 길거리에서 먹는 백숙과 계곡 백숙 가격이 다르니까요. 출처: 기타음식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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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재구무님의 댓글

  • 재구무
  • 작성일
별에별 일이 다있네

재구무님의 댓글

  • 재구무
  • 작성일
와 이런일이 있었네요;;

불문가지님의 댓글

  • 불문가지
  • 작성일
즐 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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